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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에드워드 데밍 (William Edwards Deming) (1900~1993)

1950년 여름 도쿄. 세미나 참석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중년의 강사가 ‘선진국 제품을 Copy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일본 상품의 이미지를 5년이면 바꿀 수 있다’라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비법은 ‘통계적 프로세스 통제(SPC: Statistical Process Control)’. 데밍의 지도와 조언에 따라 불과2년 만에 품질에 대한 효과가 나타났다. 일제 상품이 세계시장에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중년의 강사가 바로 데밍, 미국의 통계학자이다. 가난한 시골 변호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8세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공학과 수학ㆍ물리학을 공부했다.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학비조달을 위해 인턴으로 벨 연구소에서 일하였으며, 졸업 후 미국 농무부에서 일하면서 벨 연구소의 슈하트(Walter Shewhart)를 만나게 된다.

슈하트로부터 전수받은 통계적 관리의 개념을 생산과 경영관리에 적용하였으며, 2차 대전 중에는 미국 통계국에서 일하면서 전쟁물자 품질관리에 관여하게 된다. 이때 군납업체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을 위한 8~10일 과정의 품질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규모의 교육과정을 통해 1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들이 슈하트의 관리방법을 교육받았고, 그 중 스터디 그룹을 통해서 계속 연구한 사람들이 ASQC(American Society for Quality Control)을 창설하는 모태가 되었다.

종전 후, 일본점령 군사령부가 인구Census업무를 맡기기 위해 그를 일본으로 초빙하였고, 전후 복구작업에 노력 중이던 일본의 과학자와 공학자, 관리자들에게 통계와 품질통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전수하게 된다. 1950년 품질촉진 세미나에서, 일본 경제 지도자들에게 품질관리에 의한 원가절감 및 생산성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SONY 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후 일본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여 컨설팅과 강의, 출판에 돈을 받지 않았던 데밍. 이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일본과학기술연맹(JUSE: Japanese Union of Scientists and Engineers)에서 제정한 데밍상(Deming Prize)은 세계적인 품질관리상으로 손꼽힌다.

데밍은 미국보다 일본에서 산 날이 더 많았다. 데밍의 헌신으로 일본은 세계적인 품질 수준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일본인의 특성에 맞는 소집단 활동을 중심으로 한 TQC(Total Quality Control)은 80년대 일본자동차를 비롯하여 일본제품이 품질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시장을 잠식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데밍은 생애 최후의 작품인 저서, “신경제학(1993)”에서 “심원한 지식체계 (Profound Knowledge)”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했다. 핵심부분을 요약하면 우선 개인이 변해야 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연속선상의 변화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다른 불연속선상의 변화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데밍이 초기에 제시했던 PDCA에 의한 지속적인 개선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불연속선상의 변화는 심원한 지식체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변화된 사람은 인생, 사건, 수치에 대한 해석, 대인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데밍 스스로는 슈하트 사이클이라고 일본사람들에게 소개하였으나, 일본사람들이 데밍 사이클로 부르게 되면서 PDCA사이클, 혹은 데밍 사이클로 알려지게 되었다. PDCA에서 A는 P로 돌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며, 일과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순환을 통해 지속적인 개선을 이루게 된다.